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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포에니 전쟁

by 자연과더불어 2023. 10. 24.

포에니전쟁(Punic Wars)은 고대 로마와 고대 카르타고(Empire of Carthage) 사이에 벌어진 세 번의 중요한 군사 충돌을 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러한 충돌은 로마 제국과 카르타고 제국 간의 경제, 정치 및 군사적 무력 대립으로 이어졌으며,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각각의 포에니전쟁과 그 중요한 사건들을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1. 1차 포에니전쟁 (B.C.264-B.C.241)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카르타고는 광활한 지중해 영토를 지배하는 강력한 해양 제국이었습니다. 1차 포에니전쟁은 로마와 카르타고 제국 사이에서 시칠리아(Sicily) 섬을 둘러싼 경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이들은 지중해 상에서 교역 파트너였으며 경쟁자이기도 했습니다. 시칠리아 섬의 메시나가 시라쿠사에게 공격을 당하자 로마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로마는 메시나의 도움에 응하면 시칠리아 섬에 영향력이 있던 뛰어난 해군을 보유한  카르타고와 맞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도움에 응하지 않으면 로마땅과 가까운 시칠리아 섬이 카르타고의 전진기지가 되어 로마 본국이 전쟁터가 될 수 있기에 파병을 결정하게 됩니다. 로마군은 해군 강국인 카르타고에 대항해 갈고리가 달린 잔교(까마귀라 불림)를 적선에 걸고 병사들이 적선으로 넘어가 해전을 육전으로 바꾸는 전략으로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쟁은 로마의 지중해 제국으로의 확장을 신속히 촉진시키고 카르타고와 로마 간의 적의를 증대시켰습니다. 

시칠리아 섬

 

2. 2차 포에니전쟁 (B.C.218-B.C201)

1차 포에니 전쟁의 결과로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섬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후 복수와 영토 확장을 목표로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갈등이 재점화된 결과로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지중해 지역에서의 경쟁과 자원 확보를 두고 대립하였습니다. 1차 포에니 전쟁 이후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 바르카는 히스파니아에서 원주민을 복속시키고 식민지 경영을 했습니다. 히스파니아에서 카르타고 세력이 커지자 로마는 위협을 느끼고 에브로 강을 경계로 하는 조약을 카르타고와 맺습니다. 이후 히스파니아의 주둔군 총사령관인 된 한니발은 로마와의 전쟁을 결심하면서 스페인에 있던 사군툼이라는 도시를 공격합니다. 이후 한니발은 로마를 공격하게 위해 대담하게 알프스 산맥 행군을 감행했습니다. 알프스 산맥 원정은 매우 험준하고 초겨울이라 추위도 심해 매우 위험한 모험이었습니다. 더구나 알프스 산맥의 원주민들도 카르타고 군에 비우호적이라서 싸우면서 횡단할 수밖에 없어 병력의 절반이나 되는 병력을 잃었습니다. 알프스 산맥 원정으로 인해 절반의 병력을 읽고서도 한니발은 로마군을 상대로 승리하며 다수의 동맹을 얻었습니다. 연전연승하던 카르타고 군은 한니발의 동생인 하스두르발이 지원군을 이끌고 오던 중 로마군에 의해 패배하여 지원이 끊겼습니다.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는 한니발을 피해 카르타고 본국으로 진격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이로인해 결국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은 로마에 패배했습니다. 1차 포에니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카르타고가 로마를 상대로 초기에는 승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험난한 알프스 원정으로 인한 병력 손실과 지원을 오던 지원군의 패배로 결국 패배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한니발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전략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알프스 원정을 하는 과감한 전략으로 후대에도 명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 이후 한니발의 보병과 기병의 유기적인 운용에 곤란을 겪었던 로마는 이 전략을 습득하면서 군사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한니발 알프스원정(왼쪽)       스키피오-한니발 전투(오른쪽)

 

3. 3차 포에니전쟁 (B.C149BC-B.C146)

카르타고는 1차, 2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해 로마의 허락 없이는 전쟁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풍부한 농업 생산력과 해상무역으로 곧 경제력은 회복했습니다. 로마는 언제든 카르타고가 군사력을 회복해 제2의 한니발이 출현할 수 있다는 불안함에 카르타고의 주변국인 누미디아에게 카르타고의 영토를 약탈하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누미디아의 약탈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은 카르타고는 로마의 허락 없이 누미디아와 맞서 싸웠으나 패배했습니다. 로마는 조약을 어긴 카르타고에 굴욕적인 조건을 내걸었고 카르타고는 굴욕감과 패배감을 맛보느니 차라리 로마와 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전 전쟁의 패배로 모든 무기를 로마로 보낸 카르타고는 로마군에 포위당해 성안에서 성벽을 헐어 돌을 투척하며 싸웠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카르타고인들의 항전에 전쟁은 장기전이 되었으나 결국 전쟁 3년 차에 성벽이 뚫렸습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로마인들에 의해 불태워지고 파괴되어 기원전 146년에 멸망했습니다. 이로써 로마는 지중해 지역에서 군사적 및 정치적 지배력을 확립하였고, 카르타고는 그 존재 자체를 잃었습니다.

카르타고 위치(왼쪽)     카르타고 기둥건물 유적(오른쪽)

 

 

포에니전쟁은 고대 로마의 세계 제국을 강화하고 카르타고 제국의 부활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로마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지중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들의 이야기는 역사서와 소설,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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