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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케네 문명

by 자연과더불어 2023. 10. 18.

트로이를 발견한 슐리만은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연합군 지도자였던 아가멤논의 고향인 미케네가 있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이 전에도 많은 고고학자들의 발굴 시도가 있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슐리만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미케네 왕의 묘지를 발견했고 1876년부터 1885년까지 발굴 작업을 하면서 세상에 미케네 문명을 공개했습니다.

 

 

미케네 문명의 역사

기원전 2000년 경 아카이아인들이 그리스 북쪽 산지로부터 그리스 본토 남부 지역으로 남하했고 선진문물을 흡수하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6세기에 시작하여 기원전 11세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북동부 아르고스의 미케네를 중심으로 아테나이, 필로스, 테바이, 티린스에서 발전한 청동기를 기반으로 한 고대 그리스의 문명입니다. 도시국가 형태로 발전했으며 각 도시가 독자적인 통치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중해 지역과의 교역을 통해 다양한 상품과 문화적 요소를 수입했으며 금속가공과 거래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원전 1400년 경에 가장 번영하였으며 크레타인의 뒤를 이어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호메로스는 서사시에서 미케네를 '황금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 왕족의 무덤에서 황금 수의, 황금 마스크, 등 많은 황금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미케네 문명의 사회구조

미케네 문명은 왕과 귀족층으로 구성된  피라미드 형태의 사회였습니다. 왕은 주변의 촌락들로부터 각종 물품을 거둬들이고, 대토지와 많은 가축,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노예들은 주로 전쟁에서 잡혀온 여자들로 대부분 개인이 아닌 국가의 소유였으며 집안일을 돕거나 일꾼의 역할과 같은 비생산적인 일을 수행했습니다. "키클로프스"의 성벽은 당시 미케네의 왕과 지배층의 권력이 강력했음을 보여줍니다. 

 

트로이전쟁

기원전 8세기의 시인인 호메로스가 서사시 "일리아스"에 미케네인의 트로이 공격을 극화한 것이며 기원전 1200년 경에 일어난 트로이전쟁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합니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인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유혹에 빠져 트로이로 도망간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모욕을 참을 수 없었던 메넬라오스는 자신의 형인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에게 아내를 되찾기 위한 원조를 청합니다. 동생의 청을 들은 아가멤논은 "이것은 비단 너만의 수치가 아니라, 그리스 전체의 수치다."라고 크게 분노하며 그리스의 여러 나라에 사신들을 보내 트로이 공격에 합세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9년이 지나도 승부가 나지 않았고 파리스와 헬레네가 도망간 지 10년쯤 접어들었을 때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최고의 명장인 아킬레스의 사이가 나빠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킬레스가 없는 그리스 군은 연전연패하며 전세는 트로이 쪽으로 기울었고 이런 전세를 보다 못한 아킬레스의 친구이자 영웅인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스에게 전투에 참가하도록 간청합니다. 간청에도 불고하고 아킬레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이에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스에게 "자네의 갑옷과 군사들만이라도 빌려주게"라고 말하며 청을 했고 마지못해 아킬레스는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은 파트로클로스가 참전하자 그리스 군은 아킬레스가 다시 출전한 줄 알고 사기가 치솟아 트로이 군을 몰아붙였는데 이 전투에서 트로이의 용장 헥토르와의 결전에서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킬레스는 자신 때문에 파트로클로스가 죽었다고 자책하며 원수를 갚기 위해 다시 전투에 나섰습니다. 그 후로도 전쟁이 계속되었는데 헥토르를 죽인 아킬레스도 파리스가 쏜 독화살에 그의 유일한 약점인 아킬레스 힘줄(발목 힘줄)에 맞아 허무하게 죽었습니다. 오랜 전쟁에 지친 그리스 군은 오디세우스의 계략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해변에 거대한 목마와 시논이라는 사람을 남겨둔 채 퇴각을 가장합니다. 시논은 목마는 그리스인의 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으로 성안으로 들어가면 트로이의 함락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 안으로 들이지 못하도록 크게 만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트로이인은 시논의 말을 믿고 성벽을 크게 부수고 목마를 성 안으로 들였고 잔치를 베풀어 술을 마시며 즐겼습니다. 시논의 신호에 따라 그리스 군이 돌아와 사방에서 공격하자 목마 속에 숨어있던 병사들이 나와 성을 점거하며 트로이 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역사학자들은 실제의 전쟁이었는지 의구심을 품었지만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에서 발견된 대량의 외교 문서를 통해 실체였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외교 문서에 의하면 윌루사에 미케넨 인들이 쳐들어왔다는 내용이 있는데 윌루사가 곧 일리오스(트로이)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미케네문명의 유물과 유적

견고하고 웅장한 성채와 궁전 터, 인물 중심의 프레스코화를 그린 귀족들의 저택과 왕족들과 보물을 묻은 묘실(아트레우스의 보물 창고)등의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 황금 잔 등을 비롯한 많은 황금 유물과 정교하게 세공된 장식구 등의 유물들도 출토 되었습니다. 발굴된 왕궁은 주 출입문인 사자문을 포함하여 크레타 문영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개방적이었던 크레타 궁전에 비해서 사방이 폐쇄된 요새로서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1876년 왕족 무덤에서 시신 얼굴을 덮은 황금가면 5개가 발견되는데 그중에 하나입니다. 발굴자는 가면의 주인이 트로이 전쟁 영웅 아가멤논이라 믿고 유물에 그의 이름을 붙였지만 아가멤논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미케네 문명의 역사와 중요한 사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에도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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