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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거란전쟁, 2차침공과 양규장군의 활약상

by 자연과더불어 2023. 12. 4.

거란의 2차 침공은 거란황제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온 전쟁으로 대부분의 병력은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거란군은 그동안 송나라와의 수많은 전투로 인해 전쟁에는 능숙했습니다. 

 

 

1. 흥화진 전투-거란 2차 침공의 서막

거란의 40만 대군은 산성인 흥화진을 공격하며 2차 침공의 서막을 엽니다. 양규장군은 4천 명도 되지 않는 병력과 계속 쏠 수 있는 석궁인 "노"를 가지고 거란의 40만 대군을 일주일 간 막아내며 흥화진을 지켜냅니다. 이에 거란 성종은 거란군 20만으로 흥화진을 포위하게 하고 나머지 20만의 대군을 남하시킵니다. 

 

출처 : kbs

 

2. 통주성전투의 대패

흥화진을 놔두고 남하하던 거란의 20만 대군은 통주성에 이르렀습니다.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즉위시키며 쿠데타를 일으킨 강조는 고려의 대규모 병력을 직접 지휘해 통주성에서 거란군을 맞이합니다. 강조는 다른 사람에게 대규모 군대를 지휘하게 하면 본인도 어찌 될지 몰라 직접 지휘해 거란군과의 전쟁을 빨리 끝내려고 했습니다. 수성전은 고려군이 능숙하게 가장 잘하는 전술로 유목민족인 거란군에게는 상극이었습니다. 전쟁을 빨리 끝내려고 했던 강조는 수성전을 버리고 대회전에 능숙한 거란군과 우리나라 역사상 전례가 없던 대회전으로 맞붙습니다. 소규모 기병으로 고려군을 탐색하던 거란군은 대회전에 익숙하지 않은 고려군의 약점을 알아내고 사방에서 포위하며 고려군을 압박했습니다. 거란군은 가장 강한 기병으로 고려군을 돌파했고 이로 인해 고려군은 진영이 무너지며 혼비백산 사방으로 흩어지며 대패하게 됩니다. 뿔뿔이 흩어지는 고려군은 빠른 기동력을 가진 거란군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김훈을 비롯한 몇몇 장군들이 병력을 수습해 고개에서 거란군을 방어하면서 천만다행으로 고려군의 전멸을 막아냅니다. 

 

출처 : 국방tv

 

3. 양규장군과 700군사의 활약

거란의 20만 대군에 포위 당해 흥화진 성안에 갇혀있던 양규장군은 700명의 병사와 함께 20만 대군을 뚫고 통주까지 갔습니다. 통주에서 1,000여 명의 군사를 수습해 1,700여 명의 고려군으로 거란군이 차지하고 있던 곽주성을 기습 공격을 해 곽주성을 탈환했습니다. 수성하고 있던 거란군 6천여 명을 섬멸하고 통주성전투에서 승리하고 개경을 점령하고 있던 거란군의 후방을 공격하며 교란합니다. 곽주성의 패배로 보급의 문제가 생겨 다급해진 거란의 성종은 현종의 약속만을 믿고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양규 장군은 포로를 잡고 후퇴하는 거란군을 그냥 보지 않고 기습을 통해 포로들을 구합니다. 기습을 통해 거란군을 물리치던 양규장군은 성종의 20만 대군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포로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양규 장군과 1,700명의 병력은 거란의 20만 대군과 맞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합니다.